월드컵 역사상 가장 충격적인 순간 Top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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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nytimes.com/athletic/7278815/2026/06/03/world-cup-maddest-moments
By Tim Spiers
앞으로 5주 반 동안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질 거라고 예상해도 좋다. 월드컵은 사람을 이상하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다. 엄청난 압박감 때문이든, 전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는 무대 때문이든, 혹은 나라의 기대를 짊어져야 하는 부담 때문이든 말이다. 축구 선수들은 종종 그 순금 트로피를 향한 광적인 집념 속에서 평정심과 이성을 잃고, 믿기 힘든 행동들을 벌이곤 한다.
박치기, 침 뱉기, 다이빙, 물어뜯기, 눈물, 부정행위, 절도, 심지어 제시간에 도착하지 못해 월드컵 자체를 놓치는 일까지...
이 모든 일은 지난 96년간 월드컵 역사 속 어딘가에서 실제로 벌어졌다. 이제 월드컵 역사상 가장 황당하고 정신 나갔던 순간들을 살펴보자. 얼마나 황당했는지 순으로
20위 베컴의 치명적인 발길질
당시 규정상으로는 명백한 퇴장이었지만, 이 사건은 영국 전체가 집단적으로 이성을 잃을 정도의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다. 데이비드 베컴은 1998년 월드컵 아르헨티나전에서 디에고 시메오네을 향해 발을 툭 차는 행동을 했다가 퇴장당했다. 이 장면은 결국 잉글랜드가 승부차기 끝에 고통스러운 패배를 당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
이후 베컴은 몇 달 동안 대중의 증오 대상이 됐다. 언론과 냉혹한 축구 팬들은 패배의 책임을 그에게 돌렸고, 심지어 웨스트햄에서는 베컴의 허수아비가 목매달린 채 전시되는 일까지 벌어졌다.
19위 정신 나갔던 첫 번째 월드컵
1930년 첫 월드컵에서 벌어진 수많은 황당한 사건들 가운데 무엇을 꼽아도 이상하지 않다. 예를 들어, 이집트는 말 그대로 배를 놓쳐서 월드컵에 참가하지 못했고, 또 미국 대표팀의 물리치료사는 경기장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던 클로로포름 병에 맞아 기절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게다가 한 루마니아 선수는 대회가 끝난 뒤 팀과 함께 귀국하지 않아 어머니가 그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장례식까지 준비했는데, 장례식 당일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났다는 믿기 힘든 일화도 있다.
18위 월드컵 트로피 도난
아니, 여기서 말하는 건 1954년 독일연방공화국이 강력한 우승 후보였던 헝가리를 꺾은 이야기가 아니다. 진짜 월드컵 트로피가 도난당했던 사건을 말하는 것이다.
이 사건은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을 약 3개월 앞두고 벌어졌다. 당시 월드컵 트로피는 런던 웨스트민스터의 한 전시관에 공개 전시되고 있었다.
다행히도 트로피는 런던 남부 어퍼 노우드의 한 울타리 밑에서 신문지에 싸인 채 발견됐다. 그리고 이를 찾아낸 주인공은 피클스라는 이름의 흑백 콜리견이었다.. 그해 7월 잉글랜드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하자, 피클스는 대표팀의 공식 우승 축하 행사에도 초청받았다. 솔직히 말해서, 피클스는 화려한 행사보다는 비스킷 한 조각이면 더 만족했을지도 모른다.
17위 자이르 선수의 황당한 프리킥 방해
겉으로는 황당한 장면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섬뜩한 사연이 숨어 있었다. 1974년 당시 자이르는 월드컵에 출전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최초의 국가대표팀이었지만, 대회는 전혀 순조롭게 흘러가지 않고 있었다. 자이르는 스코틀랜드에 0-2로 패한 데 이어 유고슬라비아에 무려 0-9로 대패했다.
이후 수비수 므웨푸 일룽가의 증언에 따르면, 당시 자이르의 독재자였던 모부투 세세 세코 대통령은 브라질과의 마지막 조별리그 경기에서 0-4 이상으로 지면 귀국을 허락하지 않겠다고 위협했다. 브라질전에서 0-2로 뒤지고 있던 상황, 일룽가는 브라질의 프리킥을 앞두고 수비벽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공을 멀리 걷어차 버렸다. 당시에는 그저 황당하고 미친 행동처럼 보였지만, 사실 그 행동의 배경에는 두려움이 있었다. 결국 자이르는 브라질에 0-3으로 패배했고, 위협받았던 4점 차 패배는 간신히 피할 수 있었다.
16위 다이애나 로스의 페널티킥 실축
1994년 미국 월드컵 개막식은 매우 화려하면서도 다소 과장된 연출로 진행됐다. 다이애나 로스는 오프라 윈프리의 소개를 받은 뒤, 흰 카드를 든 무용수들 사이로 등장해 페널티킥을 차기 위해 공 앞에 섰다. 하지만 전설적인 가수였던 그는 공을 제대로 맞히지 못했고, 슛은 골대를 한참 벗어나고 말았다. 골문은 연출에 따라 두 조각으로 갈라졌지만, 우스운 점은 골키퍼가 몸을 던져 막으려 했기 때문에 설령 골문 안으로 갔더라도 막혔을 가능성이 높았다는 것이다. 다행히도 몇 주 뒤 열린 결승전에서 로베르토 바조가 1994년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실축 중 하나를 기록하면서, 다이애나 로스의 실수는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게 됐다.
15위 개스코인의 눈물
1990년 월드컵에서 잉글랜드는 선수들의 원치 않는 신체 반응 때문에 여러 화제를 낳았다. 수비수 테리 부처는 스웨덴과의 예선 경기에서 머리를 다쳐 엄청난 출혈을 흘렸는데, 경기 종료 무렵에는 마치 정신 나간 도끼 살인마처럼 보일 정도로 온몸이 피범벅이 됐다. 한편 게리 리네커는 아일랜드와의 조별리그 경기 도중 화장실 문제로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하지만 이 둘보다 더 강렬한 장면을 남긴 것은 스타 선수 폴 개스코인이었다.
그는 서독과의 준결승전에서 경고를 받았고, 만약 잉글랜드가 결승에 진출하더라도 자신은 경고 누적으로 결승전에 뛸 수 없게 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자 경기 중 눈물을 흘리며 오열했다. 결국 잉글랜드는 결승 진출에 실패했다. (개스코인이 너무 큰 충격을 받아 승부차기 키커로 나서지 못한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눈물 덕분에 개스코인은 국민들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하나의 국민적 영웅이 탄생했다.
14위 수아레스의 골라인 핸드볼
엄청난 드라마와 논란을 낳았다는 점에서 '미친 순간'이었지만, 동시에 루이스 수아레스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냉정하고 명확한 판단이 담긴 순간이기도 했다. 그는 2010년 월드컵 8강전 가나전에서 연장전 종료 직전, 가나의 확실한 골을 골라인 위에서 손으로 막아냈다. 그 대가로 퇴장을 당했지만, 팀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셈이었다.
만약 수아레스가 그 상황에 개입하지 않았다면 우루과이는 그대로 패배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의 핸드볼 이후 가나는 페널티킥을 놓쳤고, 결국 우루과이는 승부차기 끝에 승리했다. 즉, 수아레스는 퇴장을 감수하면서까지 골을 막아냈고, 그 선택은 결과적으로 우루과이를 준결승으로 이끄는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2022년 월드컵에서 우루과이와 가나가 다시 맞붙었을 때, 루이스 수아레스는 이렇게 말했다. "난 그 일에 대해 사과하지 않는다. 가나 선수가 페널티킥을 놓친 거지, 내가 놓친 게 아니다." 기사는 이에 대해 비꼬듯이 이렇게 덧붙인다.
이 장면에 부족했던 건 닥터 이블의 손짓 하나와, 광기 어린 악당 웃음소리, 그리고 쓰다듬을 털 없는 고양이 정도뿐이었다.
13위 램파드의 오심 골
2010년 월드컵 16강전에서 잉글랜드는 독일에 2-1로 뒤지고 있었다. 그때 프랭크 램파드가 골키퍼 마누엘 노이어를 넘기는 슛을 날렸고, 공은 크로스바 아래를 맞은 뒤 골라인을 한참 넘어서 떨어졌다.
하지만 주심과 부심은 이를 보지 못했고, 골은 인정되지 않았다. 결국 잉글랜드는 1-4로 패배했다. 이후 조제프 블라터 FIFA 회장은 공식 사과를 했고, 2년 뒤 축구계에는 골라인 판독 기술이 도입됐다.
훗날 램파드는 이렇게 말했다. "그 기술은 축구를 더 나은 방향으로 바꿨다." 그리고 기사는 이렇게 비꼰다. 다만 그 경기에는 너무 늦게 도입됐을 뿐이다.
12위 뉘른베르크 전투
축구 경기 하나가 따로 위키백과 문서까지 가지고 있다면, 그 경기가 얼마나 난장판이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2006년 월드컵 16강전에서 포르투갈이 네덜란드를 1-0으로 꺾은 경기에서 러시아 심판 발렌틴 이바노프은 무려 퇴장 4장, 경고 16장을 꺼내 들었다.
혼란은 경기 시작 2분 만에 마르크 판 보멀이 경고를 받으면서 시작됐다.
이 경기에서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거친 태클을 당한 뒤 눈물을 흘리며 경기장을 떠났고, 루이스 피구의 박치기가 나왔으며, 터치라인 근처에서 선수단이 뒤엉키는 소동이 벌어졌고, 네덜란드가 공을 돌려주지 않으면서 집단 몸싸움이 발생했으며, 수많은 밀침과 거친 태클이 이어졌다.
결국 이 경기는 월드컵 역사상 가장 많은 카드가 나온 경기로 기록됐고, 지금도 깨지기 어려운 기록으로 남아 있다.
11위 파업에 나선 프랑스 선수단
2010년 월드컵에서 프랑스 대표팀은 선수단 반란 속에 무너졌고, 감독 레몽 도메네크은 팀을 조별리그 통과로 이끌지 못했다. 그는 하프타임에 벌어진 말다툼 도중, 당시 첼시 공격수였던 니콜라 아넬카가 자신에게 심한 욕설을 했다는 이유로 아넬카를 대표팀에서 쫓아냈다.
(정확히 어떤 말을 했는지는 논란이 있으며, 아넬카가 관련 보도 내용에 대해 법적 대응을 한 적도 있어 원문도 구체적인 표현은 피하고 있다.)
이에 선수들은 아넬카의 징계에 반발해 훈련을 보이콧하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하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아넬카는 결국 18경기 출장 정지 징계를 받았다. 게다가 선수들은 경기장 안에서도 엉망이었다. 프랑스는 개최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에 1-2로 패했고, 이 패배로 월드컵 탈락이 확정됐다.
즉, 대표팀 내부는 감독과 선수들의 갈등으로 무너졌고, 경기력까지 무너지면서 최악의 월드컵을 보내게 된 것이다.
10위 월드컵 결승전 명단에서 빠진 호나우두
역대 월드컵 팀 명단 관련 사건 중 가장 큰 논란 중 하나였다. 1998년 당시 호나우두는 세계 최고의 선수이자 가장 유명한 축구 선수였다. 그런데 프랑스와의 월드컵 결승전을 앞두고 공개된 선발 명단에서 그가 벤치 멤버로 표기되면서 엄청난 혼란과 소동이 벌어졌다. 대신 에드문두가 최전방 공격수로 이름을 올렸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명단이 도착했고 이번에는 호나우두가 선발 명단에 포함돼 있었다.
당연히 모두가 혼란에 빠졌다. 이후 밝혀진 바에 따르면, 호나우두는 결승전을 앞두고 호텔 방에서 경련 증세를 보였으며 정상적인 컨디션으로 경기에 나설 수 없는 상태였다.
하지만 그는 결국 결승전에 출전했고, 브라질이 0-3으로 패배하는 동안 마치 좀비처럼 경기장을 힘겹게 뛰어다니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4년 뒤 2002년 월드컵에서 호나우두는 완벽한 재기에 성공했다. 그는 브라질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월드컵 득점왕인 골든 부트까지 차지하며 최고의 복수극을 완성했다.
9위 레이카르트의 침 뱉기 사건
1990년 월드컵 16강전에서 네덜란드의 스타 선수 프랑크 레이카르트가 서독 공격수 루디 펠러의 곱슬 머리 뒤통수에 가래침을 뱉자, 펠러는 격분했다. 두 선수는 한동안 신경전을 이어갔고, 결국 나란히 퇴장당했다.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경기장을 빠져나가던 레이카르트는 또다시 푈러에게 침을 뱉었다. 원문 표현대로라면 정말 끔찍하고 역겨운 장면이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악연은 영원히 이어지지 않았다. 6년 뒤인 1996년, 레이카르트와 펠러는 한 버터 광고에 함께 출연해 목욕가운을 입고 다정하게 포옹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즉, 당시의 감정은 결국 시간이 지나며 풀렸던 셈이다.
8위 히바우두의 다이빙
2002년 월드컵 조별리그 브라질-튀르키예전. 경기 종료 직전인 후반 추가시간 94분, 브라질의 히바우두는 시간을 끌고 있었다.
그때 튀르키예의 하칸 운살이 코너킥 지점으로 공을 강하게 차 보냈고, 공은 히바우두의 다리를 맞았다. 하지만 히바우두는 갑자기 얼굴을 감싸 쥐고 쓰러졌고, 비명을 지르며 뒹굴었다. 마치 벌집이 머리 위에 떨어진 것처럼 과장된 반응을 보였다.
주심은 이를 속아 넘어갔고, 운살은 두 번째 경고를 받아 퇴장당했다. 이 경기에서 MVP에 선정된 히바우두는 이후 FIFA로부터 4,500파운드의 벌금과 680파운드의 비용 부담 처분을 받았다. 이유는 명백했다. 연기 때문이었다. 이후 히바우두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퇴장 카드가 나온 것을 보고 기뻤다. 축구가 아름다운 스포츠로 남으려면 창의적인 선수들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야 한다."
'창의적'이라고 부를 수도 있겠지. 하지만 난 '버릇없는 철부지 연극부 학생 같은 행동'이라고 부르겠다.
7위 경고 두 장을 받고도 계속 뛴 선수
축구 역사상 가장 이상한 심판 실수 중 하나였다. 2006년 월드컵 조별리그 크로아티아-호주전에서 크로아티아 수비수 요시프 시무니치는 경고 두 장을 받았는데도 퇴장당하지 않았다. 이유는 잉글랜드 출신 주심 그레이엄 폴 의 기록 실수 때문이었다.
폴 심판은 시무니치가 61분에 받은 첫 번째 경고를 기록하지 못했고, 90분에 두 번째 경고가 나오자 그것을 첫 번째 경고로 착각했다. 결국 시무니치는 경고 두 장을 받고도 그대로 경기를 계속 뛰었다.
더 황당한 것은 경기 종료 직후였다. 휘슬이 울린 뒤에도 시무니치는 심판에게 항의했고, 이에 폴 심판은 또다시 경고를 꺼내 들었다. 그제야 시무니치는 세 번째 경고를 받은 뒤 뒤늦게 퇴장당했다.
즉, 월드컵 경기에서 경고 3장을 받고 퇴장당한 전무후무한 사례가 탄생한 것이다. 훗날 폴 심판은 철학적인 듯 이렇게 말했다.
"인생에서는 자신에게 주어진 카드를 받아들이고 살아가야 한다."
카드라는 단어가 들어간 이 말은 아이러니가 넘쳐흘렀다.
6위 킨의 월드컵 대표팀 이탈
로이 킨과 아일랜드 대표팀 감독 마이클 매카시의 충돌은 애초에 서로 잘못을 인정하고 화해로 끝날 일이 아니었다. 2002년 월드컵을 앞두고 사이판에서 진행된 아일랜드 대표팀 전지훈련에서, 킨은 훈련 환경이 지나치게 아마추어적이라고 불만을 품고 있었다.
여기에 매카시 감독이 킨이 예선 경기에 출전하지 않기 위해 부상을 과장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면서 갈등은 폭발했다. 결국 주장인 킨은 대표팀을 떠나 귀국했다.
당시에는 그가 귀국 후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진이 신문 1면을 장식할 정도로 큰 화제가 됐다. 반면 매카시 감독은 킨 없이도 아일랜드를 월드컵 16강까지 이끌었다. 이 사건은 전 세계적인 화제가 됐고, 훗날에는 아예 영화로 제작되기까지 했다.
이보다 더 황당한 사건은 없을 것 같다고? 아직 아니다.
5위 수아레스, 키엘리니를 물다
구글에 "Suarez bites..."를 검색해 보면 자동완성에 여러 사건들이 뜬다. (심지어 영국 블랙번에 있는 "Suarez's Tasty Bites"라는 햄버거 가게까지 나온다.) 그 사실만 봐도 루이스 수아레스의 '식성'이 얼마나 유명한지 알 수 있다.
2014년 월드컵 조별리그 우루과이-이탈리아전에서 지오르지오 키엘리니는 수아레스에게 어깨를 물린 상대 선수였다. 하지만 키엘리니는 첫 번째 피해자가 아니었다.
수아레스는 이미 이전에도 상대 선수를 무는 행동으로 여러 차례 논란을 일으킨 적이 있었고, 이번 사건으로 인해 4개월 출전 정지 징계를 받았다.
누가 저 사람한테 입마개 좀 씌워라.
4위 슈마허, 바티스통을 혼수상태에 빠뜨리다
음... 솔직히 이 사건은 웃을 만한 내용이 전혀 아니다.
1982년 월드컵 준결승전은 서독이 프랑스를 승부차기 끝에 꺾고 결승에 진출한 경기로, 월드컵 역사상 최고의 명승부 중 하나로 꼽힌다. (3-3의 명승부였다.)
하지만 이 경기는 대부분 서독 골키퍼 토니 슈마허가 프랑스 수비수 파트릭 바티스통에게 가한 충격적인 태클로 기억된다.
후반 60분, 바티스통은 골키퍼와 일대일 찬스를 맞아 골문을 향해 돌파하고 있었다. 그런데 슈마허는 몸을 날려 그대로 바티스통과 충돌했고, 그 충격은 엄청났다.
바티스통은 의식을 잃고 쓰러졌고, 치아가 부러졌으며, 척추에 손상을 입었고, 이후 혼수상태에 빠지기까지 했다.
더 충격적인 것은 슈마허의 반응이었다. 그는 당시 현장에서 별다른 미안함을 보이지 않았고, 훗날에야 바티스통의 상태를 경기장에서 확인하지 않은 점과 병원에 찾아가지 않은 점에 대해 사과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믿기 어려운 사실 하나.
주심은 이 장면에 파울조차 선언하지 않았다.
3위 브라질, 안방 월드컵 준결승에서 1-7 참패
축구 역사상 이 경기만큼《심슨 가족의 "그만해! 이미 죽었잖아!" 밈을 완벽하게 표현한 경기는 없었다. 브라질 선수들은 이 무대의 엄청난 압박감을 감당하기엔 너무 감정적이었던 걸까? 아니면 국가가 연주될 때마다 원래 그렇게 눈물을 흘리던 팀이었을까?
어쨌든 독일 팬이거나, 남의 불행을 즐기는 사람이거나, 혹은 둘 다가 아니라면 차마 눈 뜨고 보기 힘든 광경이었다. 브라질은 전반 6분 동안 무려 4골을 내주며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굴욕적인 방식으로 무너졌다. 실시간으로 지켜본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믿기 어려운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그래도 시청자가 별로 없었던 건 아니다. (전 세계 약 10억 명이 시청한 것으로 추정된다.) 적어도 오스카가 만회골 하나는 넣었다.
2위 마라도나의 '신의 손'
이 사건의 광기는 어디에서 비롯된 걸까? 애초에 손으로 골을 넣으려 시도한 것? 그 골이 실제로 인정된 것? 아니면 키 165cm의 마라도나가 183cm의 잉글랜드 골키퍼 피터 실턴보다 먼저 공에 닿았다는 것?
이 경기는 단순한 월드컵 8강전이 아니었다.
디에고 마라도나에게는 1966년 월드컵에서 아르헨티나를 꺾은 잉글랜드에 대한 복수이자, 훗날 자신의 자서전에서 밝힌 것처럼 4년 전 벌어진 포틀랜드 전쟁에 대한 복수의 의미도 담겨 있었다.
그리고 광기와 천재성의 경계는 불과 4분 뒤 완벽하게 드러났다. 마라도나는 혼자서 수비진을 돌파해 월드컵 역사상 가장 위대한 골 중 하나로 평가받는 환상적인 개인기를 선보이며 추가골을 넣었다.
훗날 실턴은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보다 더 높이 뛴 게 아니다. 그냥 속인 것이다."
아니, 피터. 둘 다 맞아.
1위 지단의 박치기
그야말로 '순간의 광기'를 상징하는 사건이다. 충격성, 예상치 못한 폭력, 역대 최고의 축구 선수 중 한 명, 선수 생활 마지막 경기, 그리고 월드컵 결승전까지.
1위에 필요한 모든 요소를 갖춘 사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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