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시야스가 돌아본 월드컵 "2002년은 유럽을 겨냥한 일종의 음모… 2010년 로벤은 악수를 뒀다."
갓다링다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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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전 골키퍼이자 주장 이케르 카시야스가 연장 접전 끝에 네덜란드를 1-0으로 꺾고 우승했던 2010 FIFA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에서, 승부를 가른 아르연 로벤과의 일대일 상황을 회상했다.
- 월드컵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무엇인가요?
모든 것이 정말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2002년 월드컵 전까지는 산티아고 카니사레스가 주전 골키퍼였는데, 대회 개막을 며칠 앞두고 향수병이 발에 떨어지는 바람에 아킬레스건을 다쳤죠.
그러자 호세 안토니오 카마초 감독이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네가 주전 골키퍼다. 준비해라. 나는 널 믿는다. 네 실력을 아니까 변명은 필요 없다."
당시 저는 겨우 21살이었고, 개인적으로는 꽤 좋은 대회를 치렀습니다. 다만 한국과 승부차기 끝에 패한 것이 정말 아쉬웠죠(8강 0-0, 승부차기 3-5). 무엇보다 경기 자체를 생각하면 그런 결과가 나와서는 안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 월드컵은 축구계 전체에 큰 충격을 남겼습니다. 저는 그 대회가 심판 조직과 심판 선임 과정, 그리고 판정 뒤에서 벌어지는 여러 문제들을 크게 흔들어 놓았다고 생각합니다.
이탈리아도 한국과의 16강전에서 피해를 봤고(연장전 1-2 패), 포르투갈 역시 조별리그에서 한국에 0-1로 지며 탈락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습니다.
제 생각에는 유럽 국가들을 겨냥한 일종의 음모가 실제로 있었다고 봅니다. 뭐라고 부르든 상관없지만, 그 월드컵으로 FIFA의 이미지가 크게 손상된 것은 분명합니다.
- 가장 큰 영향을 준 대표팀 감독은 누구였나요?
루이스 아라고네스입니다(2004~2008년 스페인 대표팀 감독).
그는 아주 이른 시기에 제게 주장 완장을 맡겼습니다. 기존 베테랑 선수들을 더 이상 선발하지 않기로 했을 때, 저는 대표팀에서 두 번째로 경험이 많은 선수가 됐습니다. 그때 제 나이가 겨우 스물다섯이었죠.
아주 어린 나이에 주장이 된 셈입니다. 이후 저는 10년 동안 대표팀 주장을 맡았습니다. 꽤 긴 시간이었죠, 그렇지 않나요?
- 스페인 대표팀에서 함께 뛰었던 선수 가운데 가장 뛰어났던 선수는 누구였나요?
와, 정말 어려운 질문이네요. 정말 대단한 선수들과 함께 뛰었습니다.
카를레스 푸욜은 신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엄청난 선수였습니다. 세르히오 라모스 역시 자신만의 스타일로 훌륭했고요.
저는 언제나 제 수비진에 라모스, 푸욜, 또 피케 같은 선수가 있기를 바랐습니다.
그런 선수들은 골키퍼에게 엄청난 신뢰감을 줍니다.
- 스페인 축구의 운명을 바꾼 경기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2006년 프랑스와의 월드컵 16강전입니다(1-3 패).
그날 선발로 뛰었던 11명 가운데 7~8명 정도가 2년 뒤 유로 2008 결승전 독일전에서도 뛰었습니다(실제로는 카시야스, 푸욜, 라모스, 사비, 파브레가스, 토레스 총 6명).
그 2년 동안 쌓인 경험과 성숙함이 결정적이었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이후 몇 년 동안 누구도 쉽게 넘볼 수 없었던 스페인 대표팀의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그 경기는 훗날을 위한 값진 교훈이었습니다.
- 자신이 가장 강했다고 느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2010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로벤과 일대일로 맞섰던 순간입니다.
웨슬리 슈네이더가 침투 패스를 찔러 넣었고, 우리 수비진은 완전히 역을 찔렸습니다. 푸욜도 피케도 그런 패스를 예상하지 못했죠.
로벤이 저를 향해 달려오는 것을 보는 순간 제 머릿속에는 단 하나뿐이었습니다.
"버텨. 버텨. 버텨. 버텨."
결국 저는 몸을 던졌습니다. 로벤이 저를 제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 상황에서 로벤은 여러 선택지가 있었는데, 제 입장에서 가장 막기 쉬운 선택을 했습니다.
솔직히 그 장면에서 그가 골을 넣었다면 경기 결과는 달라졌을 가능성이 매우 컸다고 생각합니다.
- 2022년 월드컵 결승전에서 랑달 콜로 무아니의 슈팅을 막은 뒤 그 장면을 종아리에 문신으로 새긴 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처럼, 그 선방을 문신으로 남길 생각은 해보지 않았나요?
아니요. 디부(에밀리아노 마르티네스)와 저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니까요.
- 경기 후 가장 크게 축하했던 순간은 언제였나요?
당연히 남아공 월드컵 우승 직후입니다. 모든 것이 순식간에 지나갔습니다.
경기가 끝난 뒤 요하네스버그의 사커시티 경기장에서 한 시간 반 정도 우승을 축하했고, 이후에는 라커룸에서도 계속 축하했습니다.
스페인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는 샴페인을 마셨고, 밤새 축하가 이어졌죠. 하지만 그때는 우리가 어떤 일을 해냈는지 완전히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거의 12시간 동안 잠도 제대로 못 잔 채 마드리드 바라하스 공항에 도착하고 나서야 비로소 우리가 이룬 업적을 실감했습니다. 그 후 오픈카를 타고 6~7시간 동안 마드리드 시내를 돌았습니다.
나라 전체가 우리를 축하하고 하나로 뭉치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믿기 어려울 정도로 감동적이었습니다. 한동안 희미해졌던 스페인인으로서의 자부심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죠.
- 다시 만나고 싶은 옛 동료가 있다면요?
빅토르 발데스입니다. 정말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습니다. 함께 정말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말이죠.
작년에 그가 레알 아빌라 감독을 맡고 있을 때 잠깐 보긴 했습니다(2024-2025시즌 종료 무렵, 스페인 4부리그 팀).
하지만 대화를 나누거나 커피 한잔할 시간은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또 어디론가 사라졌죠.(웃음)
- 가장 아팠던 패배는 무엇인가요?
2014년 월드컵에서 네덜란드에 1-5로 패했던 경기입니다. 그 팀이 그런 식으로 무너진 것은 정말 잔인했습니다. 특히 우리가 이전까지 이뤄낸 것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랬죠.
우리가 먼저 앞서갔고, 전반 종료 직전 결정적인 추가 득점 기회를 놓쳤습니다. 이후 동점골을 허용했고, 후반에는 모든 것이 무너졌습니다. 그때부터 우리의 월드컵은 완전히 꼬였습니다.
다음 경기에서 칠레에 0-2로 패하며 조별리그에서 탈락했죠. 저는 그 대표팀이 훨씬 더 좋은 마무리를 했어야 했다고 생각합니다.
- 현재 가장 자신과 비슷한 스타일의 골키퍼는 누구라고 보나요?
바르셀로나의 주안 가르시아나 아스날의 다비드 라야를 꼽고 싶습니다. 돈나룸마, 쿠르투아, 노이어처럼 엄청난 장신 골키퍼들은 아니죠.
하지만 매우 민첩하고 반응이 빠릅니다. 저 역시 가장 큰 장점은 순발력이었습니다. 키도 아주 큰 편이 아니었고, 체격으로 압도하는 스타일도 아니었습니다. 대신 빠른 움직임으로 그런 약점을 보완했습니다.
은퇴 후의 삶
스페인 국가대표 역사상 세르히오 라모스(180경기)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A매치 출전(167경기)을 기록한 카시야스는, 레알 마드리드에서 725경기, FC 포르투에서 156경기를 소화했다. 지난 5월 20일 45번째 생일을 맞은 그는 은퇴 후에도 축구와 가까운 삶을 이어가고 있다.
현재 라리가 홍보대사이자 레알 마드리드 재단 부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스페인 축구선수협회(AFE) 부회장으로도 활동 중이다.
2020년에는 스페인축구협회 회장 선거 출마를 고려했지만 결국 뜻을 접었다.
"환영받고 있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밀어붙이지 않기로 했죠."
또한 그는 옛 동료 제라르 피케와 함께 킹스 리그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으며, 스포츠 마케팅 회사를 설립했다. 현재는 'Bajo los Palos'라는 팟캐스트를 진행하며 다비드 비야, 호마리우, 루이스 피구 등 축구계의 전설들을 초대해 인터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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